‘서 있는 여자’에서의 연지는 그 시대에서도 부부사이의 평등함, 일하는 여성,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신여성적인 인물이고
반면 연지의 어머니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가정을 우선시하는, 본인 석자의 이름으로 사는게 아니라 ‘하석태교수(남편)의 아내로 사는 것에 자부심과 우월함을 느끼는 전형적인 과거 여성의 모습으로 대비된다.
그리고 소설은 두 여성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남성, 여성의 평등함을 외쳤던 연지는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자고로 ~해야해’ 라는 미풍양속에 부딪히며 가부장 사회속의 여성의 역할을 원하는 이들과의 갈등을 빚고, 본인 역시 내적갈등을 겪는다.
반대로 어머니는 남편과의 이혼을 앞두고 이혼하고 남들 못지 않게 사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이혼한 여성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큰 줄기는 이런 내용이지만 그 안에서 작가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은 개인 혼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고
여성을 위한다는 겉만 번지르르한, 결국은 여성 인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권 운동가들을 비판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연지의 상황에 대해 고구마 답답이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작품해설을 읽고 왜 답답했는지 깨달았다.
왜냐하면 평등을 위한 연지의 행동들은 미풍양속이라는 미명 하에 부딪혀 그 유리천장을 홀로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지의 남편은 물론, 시댁, 회사, 연지의 부모님까지도.
남편을 떠받들어야 하는 부덕을 강조하는 미풍양속, 결혼한 여성은 일보다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등 여자의 역할을 결정지어버리는 가부장제 사회속에서 연지 개인 혼자의 선택으로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연지를 둘러싼 환경, 사회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다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재벌2세 주인공, 씩씩한 여주를 내세운 2000년대 초반의 드라마들을 보고 있는데 딱 이 말이 떠올랐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때 마다 느끼는점, 도대체 얼마나 앞서 가신걸까?
<작가의 말> 속에서
- 내가 이 소설을 통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혼자 살아도 행복할 수 있나 없나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결혼이 과연 행복할 수 있나 없나,라는 내 딴엔 좀 새로운 문제였다.
- 결혼이란 제도는 꼭 있어야 하는 걸까? 결혼에 의해 생긴 가정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단위가 반드시 지킬 만한 것이고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아서는 안 될 신성한 것이라면 그것을 지킬 책임이 왜 아내에게만 지워져야 하는 걸까?
-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 내 마음이 문제란 말야. 남성 우위를 짓밟지 않으면 동등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성 우위를 보호해줬을 때 오히려 편하고, 맞서려면 불편해져, 불편할 뿐 아니라 온통 부자연스러워져, 그러니 지금 말만 그렇지 자기를 빨래시키고 밥 짓게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낮에 나가 돈 벌고 밤엔 종종걸음 쳐 장봐가지고 들어와 밥 지어서 자기는 생선 토막 먹이고, 난 꼬랑이 먹고, 어제처럼 출장갈 일이라도 생기면 앞뒤로 일주일씩은 자기 눈치 보느라 갖은 아양을 다 떨고, 그런 불쌍한 여자가 될 게 뻔해. 내가 가장 경멸해 마지않던 부류의 여자가 되는게 가장 속 편할 것 같으니 말도 안 돼.
-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여자가 남자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뿌리 깊게 가로놓은 문제가 본질적으로 달라지진 않는다는 얘기예요.”
- “친정 부모님이 바로 이웃에 사시고 집에 가정도 있고 하니까 이렇게 떼어놓고 나온 건데 만약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비뚜로 나간다든지 성격이 이상해진다든지 하는 즉시 가정으로 돌아가죠. 남편하고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허락받은 취직이니까요. 뭐니 뭐니 해도 여자에겐 가정이 제일 아니겠어요?”
- 그때 깨끗이 끝났어야 하는 사이를 여태껏 끌고 온 건 사람들의 이목, 특히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제 부모의 기대 때문에 더 이상 거짓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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