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로맨스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역자가 밝혔듯, 독자의 입맛에 따라 여러가지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1. 로맨스 물의 시초
발랄하고 당당한 미모의 여주를 향한,외모 재력 인성 모든 것을 갖춘 직진남 남주의 달달한 로맨스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이끌어가는 달달한 밀땅(?)씬을 중심으로 남주 여주 간의 좋지 않은 첫만남, 나를 이렇게 대하는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 여자들은 좋으면서도 거절을 한다 등, 너무나 진부하고 유치하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통하는 신데렐라 클리셰의 원조급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다.
2. 영국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판
당시 영국의 가부장적인 계급사회와 남녀 성차별적인 요소, 남자는 재산 여자는 미모로 나뉘어지는 성 고정관념,
결혼만이 전부였던, 결혼만이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속에 전개되는 치열한 구혼과 같은 구시대적인 부분과
그 안에 녹아져 있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초점을 두고 읽어볼 수도 있다.
3. 진취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는 동시에 여성혐오적 캐릭터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사랑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친구 샬롯과 달리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당당하게 거절하고,
(나름 그 당시에는) 진취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엘리자베스.
반면 남주의 캐릭터를 더 극적으로 만들고자 희생(?) 되어야 하는 여성캐릭터들의 여성혐오적 요소를 찾아볼 수도 있다.
민폐캐릭터로 나오는 베넷 가의 막내딸과 엄마 뿐 아니라,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 혐오적 주장들을 뒷받침하듯 나오는 질투와 시기심을 보이는 여러 여자들의 모습들.
(반대로 남사남(남자는 남자를 사랑한다)과 같은 주장처럼 남주와 남주 친구의 우정은 돈독하다.)
반대로 ‘여성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여성 숭배적인 모습도 여성혐오의 한 요소인데,
타인에게 너그럽고, 이해심이 넓으며,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가정의 천사’의 이상적 여성의 모습은 제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4. 오만과 편견
또, 제목 그대로 오만과 편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사점도 던져준다.
본인만이 옳고 그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본인이 믿는 것이 전부이고 완전하다는 편견에 휩싸여 실재를 판단하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 그로인해 발생되는 오해들.
‘편견’을 의인화한다면 초반의 엘리자베스 그 자체다.
의도된 것은 아닐지라도 타인들에게 불쾌감을 일으킬정도의 도도함으로 오만함을 보여주는 남주의 모습.
5.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팥팥콩콩, 부모의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까지.
그 어느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요소로 점철된 소설로 사회고발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재미와 대중성까지 한번에 잡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쉽게 책을 놓을 수 없다.
그러니 이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여러번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학계에서는 깊이있게 연구되는 작가와 작품이 아닐까.
고전은 역시 고전이고,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을 여기서 또 한번 느낀다.
오백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갈 정도의 흡입력, 뻔한 내용임을 알면서도 손에 놓을 수 없도록 만든 스피드한 전개. 빨리 남주와 여주가 만났으면 하는 설렘까지.
차갑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흔하디 흔한 캐릭터의 남주와 그런 남주를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되는, 역시 흔하디 흔한 여주의 감정 변화와 심리묘사.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입덕부정기도 재미를 더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로맨스에 선덕선덕하며 읽어내려가다가, 계속되는 민폐 캐릭터들로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앞서 읽었던 여러 영국 사회를 언급한 책들로 인해 알게된 영국의 당시 모습들을 소설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이 당시에 센세이션했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 부분은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는 결혼을 신분상승까지 덤으로 이뤄낸 점,
본인보다 한~참 높은 계급인 귀부인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과 견해를 밝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그리고 딸의 결정을 온전히 존중해주는 아버지 (무조건 자상하고 완벽한 아버지는 아니긴 했지만) 등의 모습들로 당시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답답한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같은 내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종종 비현실적인 것을 알면서도
부조리한 사회에서 주인공이 정의를 이룬 것을 보고 기뻐하듯,
권선징악의 결말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사회라고 믿듯 말이다.
* 소설 속 대사와 배경 이해에 도움이 됐던 내용
- 엘리자베스 집안도 상류층이지만 상류층 중에서는 좀 낮은 급
- 당시에는 땅을 갖고 있고 그 땅에서 나는 수익으로 먹고 살았는데, 직접 노동으로 돈을 버는 변호사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좀 천하게(?) 여겨짐
- 남주와 남주 이모는 엄청난 재력을 뽐내는데 그들의 저택 등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장원’ (처음엔 정원의 오타인 줄) 은 무지무지하게 넓다.
- only 장남만을 위한 사회, 차남은 국물도 없다. 그래서 성직자나 군인을 하면서 먹고 살았던 듯. 위에서 말한 노동력으로 먹고 사는 직업보다는 더 쳐준 것 같다.
- 당연히 이런 사회 속에 여성이 재산을 갖는 다는 것은 사치! 그래도 귀부인이나 베넷 엄마가 재산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예 없진 않았던 듯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어울리는 음악
https://vibe.naver.com/track/289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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