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nya-ong 2022. 1. 3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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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언젠가, 과학자나 소설가 등 유명한 위인들은 대부분이 남자일까, 여자는 왜 이렇게 적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해본적이 있다.

최근 톨스토이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 외 고전 소설의 작가들을 살펴볼 때에도 거의 대부분이 남자네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적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준다.

당대의 환경과,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이 여성들이 글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이었고, 사회였고, 사람들 역시 ‘여자가 글을?’ 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

설혜심 교수가 쓴 ‘소비의 역사’에서도 한번 느꼈지만, 가부장제 사회는 과거 서구에서도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울프는 트리벨리언의 ‘영국사’에서도 여성비하적인 표현을 언급하며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영국사’에 적혀있는 문장은 이와 같다.  여성혐오 표현인 ‘여자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한다’의 영국버전이랄까.

- 아내를 때리는 건 남성의 정당한 권리였으며 상류층과 하류츠이나 아무런 수치심 없이 자행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선택한 신사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딸을 방에 가두고 때리고 내동댕이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로서 여론에 전혀 충격을 주지 않았다.(후략)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엘리자베스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기이길래 이번 울프의 글에서도 그렇고 지난번 읽었던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서도 이렇게 언급되는 것일지..


울프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열등하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데, 이것이 두 성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고 했다.

남성들이 여성을 열등하다고 하면서 남성들의 지위를 올리는 것, 그렇게 남성들은 세계를 지배했다.
요즘말로는 가스라이팅과 올려치기로 표현될 수 있을 듯 하다.

-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가장에게 수많은 사람들, 사실상 인류의 절반이 자기보다 천성적으로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실제로 가장이 가진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같은 재능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을 가정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노력을 하지만 오빠인 셰익스피어와 달리 세상은 결코 그녀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 주지 않는다.

울프는 이를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핵심 메시지, 클라이막스는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셰익스피어 시대에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 키츠와 플로베르같이 천재적인 남성도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여성의 경우에는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세상은 남성에게 하듯 “원하면 써. 나는 아무 상관없으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상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글을 쓴다고? 써봐야 무슨 소용있어?”라고 말했습니다.

- 그녀의 재능은 훈련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선술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한밤중에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요?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래 세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1. 물질적인 풍요로움
2. 자기만의 방
3. 여성들의 연대

1,2번은 픽션을 쓰는 데 골똘히 몰두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을 의미한다. 울프가 인용한 아서 퀄러쿠치 경의 ‘글쓰기의 기술’에 따르면 영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 중 가난했던 시인은 단 한명이었고, 그 외 대부분은 대학을 나왔고,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영국이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재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울프가 말한 것처럼 여성은 늘 가난했고, 그 가난은 결코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런 환경에서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 조차 갖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당대 사회 상황과도 연관된다.

그래서 울프는 마지막에 여성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를 살았던 무명의 여성 시인, 작가들이 다시 태어났을 때는 그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이 열심히 그 길을 만들어 두자고.


-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있지요. 여성은 늘 가난했습니다, 지난 이백 년동안이 아니라 태초부터.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더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쥐꼬리만큼도 없었지요. 그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입니다.

- 나는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간단하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지 마세요. 이 말을 고귀하게 표현할 방법을 안다면 나는 말할 겁니다.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세요.

- 그녀는 선구자였던 무명 시인들의 삶에서 생명을 끌어당겨 태어날 겁니다. 준비 없이, 우리 편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다시 태어날 때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겠다는 결단 없이, 그녀가 출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는 다시 올 것이고, 따라서 빈곤과 무명 속에서라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 단언합니다.





백여년 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연대를 강조한 글들을 종종 읽었지만, 이만큼 마음에 울림을 준 것은 처음이다. 그 연대에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여성의 연대, 후대를 위한 선구자의 역할, 지금의 내가 선구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울프는 여성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그 내용에는 여성이 여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 유리천장을 깨는 그 모든 것이 포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울프는 짧게나마 나중에는 여성이 보호받는 위치가 아닐 것이라고도 언급하기도 했다. (통찰력에 한번 더 감탄..)

우리 사회는 지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여러 갈등들은 불가피한 것이고 더 나은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라 생각한다.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여성임원의 비율을 늘리고,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 확대, 돌봄노동의 경력인정 등. 물론 이 모든 것이 한번에 자리잡기 만무하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논의되는 것 자체가 반가운 현상이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그녀와 호흡을 맞추며 같이 상상하며 따라가야 했다. (울프의 소설도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유명하다고..)

그래서 반니(이북), 민음사(종이책) 두번 번갈아 읽고, 책 소개 내용들을 보면서 내용을 좇았다.

민음사 책에는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같이 실려 있는데 ‘3기니’는 현재 읽는 중이다. 이 역시 쉬운 글은 아니라서 한번 더 읽어볼 각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소요되는 시간은 결코 헛되거나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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