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표지의 삽화는 도리스 레싱과 그의 고양이 루퍼스같다. 루퍼스 턱에 살포시 손을 올려둔 것 같지만 집사인 내가 보기엔 살짝 앙 - 하고 물고 있는 것 같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집사라면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고양이에 대해 하고싶은 말들이 많으므로.
내 옆에 있는 우리 고양이뿐만 아니라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길고양이들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도리스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는 1967년 출간한 특히 고양이는 과 1989년 출간한 특히 고양이는, 살아남은 자 루퍼스 그리고 2000년 출간한 엘 마니피코의 노년을 합친 합본이다.
그녀의 인생에 걸친 고양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묶어놓음으로써 다양한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는 고양이 유투버 매탈남과 누리를 떠오르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 우리는 녀석에게 우유를 가져다주고 개들을 쫓아버렸다. 하지만 녀석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후려치는 빗줄기 속에 앉아서 울어댔다. 도움을 원하는 울음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입고 있던 옷 위에 비옷을 걸치고, 녀석을 따라 검은 폭풍 속을 철벅철벅 걸었다. .... 새끼들을 구해달라고 우리를 찾아왔다. .... 녀석은 그런 와중에도 새끼들에게 젖을 먹였고, 그 덕분에 새끼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p.182~187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도리스 레싱이 묘사한 고양이들의 행동에 깊은 공감을 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반려묘를 찾거나 옆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고양이 앞에서 주접을 떠는 집사라면 도리스 레싱의 주접도 크게 공감할 수 있다. 나도 매일 우리 고양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라며, 고양이 미묘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1등을 할 것이라며 주접을 떤다. 그러면 옆에서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몸매는 꼴찌야"
그리고 매일 우리 고양이를 주제로 한 자작곡을 하기도 하며 개사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도리스 레싱도 그랬던 것 같다.
- 아, 고양이. 또는 아아아아름다운 고양이! 멋진 고양이! 최고의 고양이! 새틴같은 고양이, 순한 올빼미 같은 고양이, 앞발이 나방 같은 고양이, 보석으로 장식된 고양이, 기적같은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p.86
중간 중간 고양이의 행동과 울음소리를 작가가 자체적으로 해석한 부분들, 그렇게 고양이와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마, 그때 그 고양이들은 실제로 작가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고양이도 오래 함께 하다보면 고양이의 취향이 보이고, 패턴이 보이고, 원하는 바와 원치 않는 바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상황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고양이 표현과 울음소리들.
우리 고양이도 아침에 깨울 때, 배고플 때, 집사의 늦은 귀가에 잔소리, 놀아달라고 하는 소리가 다 다르다. 가장 귀여운 소리는 간식을 기다리며 보챌때 내는 소리이다. 얼마나 앙큼하고 귀여운지. 사실 그 소리 들으려고 간식 준비를 천천히 하기도 한다.
우리 고양이는 덩치에 비해 목소리는 굉장히 갸냘프고 아기 같다. 근데 잠꼬대로 쉬익쉬익 거친 숨소리를 내거나 코고는 소리는 또 아재같다.
다만 나는 이 책을 거의 고양이에 대한 의리로 완독했다. 사실 전체적으로 그리 재미있게 쓰여진 산문집은 아니다.
온전히 번역자를 탓하고 싶진 않지만,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나 고양이 집사인 번역가가 번역을 헀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주제에 대해 모인 집단에서 그를 표현하는 여러 애칭이나 말들이 있듯이, 고양이 역시 마찬가지다.
집사들과 캣맘 사이에서는 고양이가 하는 행동, 그들의 특징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예컨대 목을 울리는 소리는 '골골송', 고양이들의 위협적인 소리는 '하악질'이 그 대표적이다. (이런 표현들을 활용하지 않은 것에는 내가 알지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것이란 생각도 든다)
책을 다 읽고도 뭔가 심심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 말미에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나라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것 같다. 또는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된 계기나, 고양이에 대해 새롭게 생겨난 애정을 더 담았을 것 같다.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다.
지금은 길고양이, 반려묘의 중성화 수술이 당연시되는 시대이고 작가가 본 에세이를 작성한 것은 60년대라, 어쩔 수 없다 싶긴 하면서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작가의 중성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답답함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고양이는 귀엽고 매력적인 동물임은 틀림없다. 고양이라는 이름도 귀엽고, 울음소리를 야옹이라고 하는 것도 귀엽고, 귀여움 투성이다.
도리스레싱에 말마따나 나는 굉장한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호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이고 놀라운 즐거움을 맛보고,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는 삶. 손바닥에 느껴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털, 추운 밤에 자다가 깼을 때 느껴지는 온기,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고양이조차 갖고 있는 우아함과 매력. 고양이가 혼자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우리는 그 고독한 걸음에서 표범을 본다. 심지어 퓨마를 연상할 때도 있다. 녀석이 고개를 돌려 사람을 볼 때 노랗게 이글거리는 그 눈은 녀석이 얼마나 이국적인 손님인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쓰다듬어주거나 턱을 만져주거나 머리를 살살 긁어주면 기분 좋게 목을 울리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 친구. p.264
우리 고양이 보고가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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