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동급생 - 프레드울만

nya-ong 2021. 9. 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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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있음
짧지만 강하다. 그리고 그 여운은 계속된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가히 충격적이고 강렬하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의 평가를 접할 때마다 ‘마지막 문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그 ‘마지막 문장’이 뭘까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확실히 그 ‘마지막 문장’에는 어떤 강렬한 울림이 있다.
원래 책들의 좋은 구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서 메모해둔다) 누군가가 기억에 남는 문장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이 책의 그 ‘마지막 문장’을 말할것 같다.

물론 그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을 완전히 다 읽어야만 그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


유대인 한스 슈바르츠와 독일 귀족 가문의 콘라딘의 우정을 그린 소설로 1930년대 나치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치즘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식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보여준다.

사실 히틀러 시대의 잔인함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독일을 떠나기 전 한스가 당한 모욕과 독일에 남은 한스의 부모님의 죽음으로써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잔혹했던 그 시기를 알기에 한스에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시점에도 한스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독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외면하고, 그토록 사랑했던 독일 시인의 시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미국에서 만나는 독일인은 신뢰하지 않는다.

내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독일을 떠올리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격이다.  


<동급생>은 한스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철저히 한스의 시점에서 쓰여졌다.

콘라딘과의 만남부터 헤어짐, 그리고 ‘마지막 문장’으로써 다시 재회하기까지 철저한 한스의 시점이다.

그래서 그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소설에서 채우지 못했던 콘라딘의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독자들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물론 그 상상은 독자들에게 달려있지만,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콘라딘에 대한 한스의 우정이 더 커 보였지만, 곱씹고 곱씹노라면 한스에 대한 콘라딘의 우정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가 살아있다면 <동급생2>로 콘라딘의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콘라딘의 신념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바뀌었는지도 함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온다.

왜 콘라딘이 한스에 삶에 들어와 다시는 떠나지 않았는지,
왜 콘라딘이 한스에게 가장 큰 행복이면서 가장 큰 절망이었는지 알 수 있다.

결말을 알고있는 상태로,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두번째로 읽을 땐 한스의 절절하고 사무치는 마음을 더 느낄 수 있다.

이 책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아마 그 시절에 한번쯤은 겪었던 우정때문이 아닐까?
친구와의 우정 그 이상의 감정, 서로의 집에 놀러가 더 사적인 영역까지 공유하고,
좋은 것들과 생각들을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 시절 우정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열여섯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렬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콘라딘은 한스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남긴다.

너는 내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어. 나에게 생각하는 법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

이런 영향 때문에 콘라딘은 그 ‘마지막 문장’과 같은 선택을 했던걸까.
옳았다고 믿었던 신념을 깰 수 있을 만큼, 목숨을 걸 만큼..
콘라딘의 그 행동은 한스를 위해 한 행동이었음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아직도 코 끝이 찡하다.



이 책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다 한 소설이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폰 호엔펠스, 콘라딘.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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