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마술을 할 때 긴장하는 바람에
문학의 고독 속으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 도입부 문장이다.
다 읽은 후에야 소설과 이 문장간의 상관관계와 그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소설 표지의 이미지와 ‘햇빛이 어른거리는’이라는 표현이 담긴 제목은
늦여름 주말 오후처럼 나른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정작 소설은 죽음과 상실로 연결되는 단편 이야기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작가가 만들어내는 문체와
신비롭게 펼쳐지는 분위기로 인해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느낌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아련하고, 먹먹하고,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없어졌다는 대만 타이베이의 ‘중화상창’이라는 큰 상가를 배경으로,
그리고 육교 위 마술사가 중심이 되어 9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마술사라는 매개체로 인해 결국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마술사가 등장하면
다소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작가의 장치가 소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산타할아버지나 도깨비를 믿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환상 속에 젖게 하는 듯 하다.
1부에서 마술사가 하는 말은
앞으로의 전개될 이야기들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 “나도 몰라. 꼬맹아, 세상에는 우리가 영영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어. 사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 “평생 네 기억 속에 남는 일이 네 눈으로 본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대만의 매력에 빠져서 대만만 3번정도 여행을 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가는 지금,
대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읽게된 소설이었다.
타이페이, 시먼딩, 타이중과 같이 익숙한 지명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설레기도 하고, 여행의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글만으로도 대만 특유의 분위기를,
가보지 않은 곳의 추억을,
마치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독자의 과거와 향수를 이끌어내는 작가야 말로
마치 육교 위 마술사 같았다.
그러나 읽으면서도
‘이게뭐야’ 라고 생각을 했던 부분도 있기 때문에^^;;
확실히 호불호가 있을 것 같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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