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어린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정말 부끄럽지만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어떻게 보면 자랑스럽게 여겼던 듯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린이들을 좋아한다는 친구들을 보며 “왜?” 라는 생각을 했다.
기차에서 아이를 달래는 부모에게 나가서 달래주시라고 차갑게 얘기했던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내 주변에 하나둘씩 어린이가 생기면서,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들을 눈으로 보고, 부모가 된 지인들을 이해하면서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나도 그랬듯 어느 순간부터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된 것 같다. 그 혐오의 대상은 다양하다. 어린이, 외국인, 여성, 노인 등.. 그리고 그 대상은 보통... ‘약자’ 였다.
그러나 그 약자는 상대적인 것으로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 혐오의 대상은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어린이였고, 여성이며,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고, 우리나라를 떠나면 외국인이 된다. 누구나 약자가 된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걸까?
어떤 칼럼에서 읽었던 인상깊은 내용이 있다. 실체도 없는 편견을 자양분으로 혐오는 그렇게 자라나고, 어느날 우연하게 정당성을 얻는다고. 예를들어 중국 사람을 툭하면 폭행한다는 편견으로 하루에 일어나는 수많은 폭행사건 중 어느 한 사건의 가해자가 중국인일 때 사람들은 말한다고. ‘그럴줄 알았다’
그 혐오의 대상자가 어느순간 ‘어린이’가 되었던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그래서 어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그리고 노키즈존이 생겨났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 한명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른들을 통해 어린이들을 소통과 배려, 해야할 것과 하지말아야할 것들을 배우며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어른들이 점점 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어린시절의 경험과 배움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어갈지는 지금 어린이들에게 달려있고, 그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은 지금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종종 기차를 타는데 예전에는 귀담아 듣지 않았던 기차의 안내방송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보호자께서도 어린이들이 객실예절을 배울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선반에 물건이 떨어져 어린이가 다치지 않도록 보호자께서는 ....”
그렇다. 이유불문하고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다.
** 칼럼
[혐오를 끊자] 서로를 겨눈 ‘혐오의 총구’ 내리자
[출처: 부산일보]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1021928585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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