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먹한 분위기의 과거를 회상하는 문체로 이루어진 책.
작가가 십여년간 외면했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열여섯살~열아홉살의 시절과 현재의 작가가 용기내어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자전적 성격의 소설.
힘든 과거는 회피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소설의 형태를 빌려 직접 마주하고 스스로 회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대단했다.
소설인만큼 제목인 외딴방부터 우물, 백로, 쇠스랑 등 작가나 작가의 주변인들, 상황을 의미하는 장치들도 눈에 띈다.
나중에 문학평론가들의 해설도 읽어보고 싶다.
현재와 과거의 내용이 교차식으로 전개되는데, 현재의 내용을 읽을 땐 안개낀 새벽녘 호수의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과거의 내용을 읽을 땐 오후 3-4시쯤의 햇빛이 느껴지는 나른한 주말 오후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군사정권의 암흑기와 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실 등 사회 고발성의 성격을 담고 있음에도 고요하고 나른하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작가는 덤덤하게 풀어나간다. 우리 부모님 세대인 7~80년대 고성장을 이룬 역동적인 한국사회를 보여줌과 동시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오월의 광주, 노동운동가들에게 가해진 국가폭력 등 시대적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 이유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슬픔을, (마침 광주 부분을 읽을 때가 공교롭게도 5월 18일이었다.)
사회 고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에 참담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가 있는것이 아닐까.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전태일만 대표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김경숙 여성 노동운동가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부분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당시 나였으면 어땠을까” 였다. 난 외면했을 수도 있다. 아니, 외면했을 것이다.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못했을 것 같기 때문에, 이런 분들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운동의 모습은 현재 진통을 겪고 있는 52시간 근로기준법과도 대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용히 쉬쉬하면 바뀌지 않는다, 시끄러워져야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어디선가 보고 와닿은 말.
그리고 안도현 시인의 ‘그 날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말.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었다. 성장 소설은 소설 속 주인공 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인 나 역시 성장하게 해준다.
책을 곁에 두고 있는 요즘, 딱 내 생각을 말해주는 문장을 덧붙여본다.
“독자는 문학 작품을 읽고 나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자아와 세계의 관계 속에서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꽃다운 여공 말고 불꽃처럼 싸운 김경숙 -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2)
https://news.v.daum.net/v/202102100951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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