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nya-ong 2021. 12.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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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짧은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선생님은 이를 콩트라고 표현했는데, 나에게 콩트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가 생각날 뿐이어서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첫번째 콩트를 읽고 이게 끝인가? 하고 얼마나 뒤적였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단편소설이라고 하기 애매할 만큼 더 짤막한 글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문 한켠에 실리는 분량정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단편들은 1,2,3 으로 시리즈를 나누기도 했다.

짤막한 글인만큼 주인공들의 많은 이야기나 서사가 담겨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박완서 선생님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 독자가 그 이후를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각자의 장편 소설로까지 끌어나갈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제목처럼, 단편 속 이야기들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또 하나는 그 시대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때도 가파른 상승을 보이는 부동산이 문제였고, 미혼자녀들을 결혼시키기에 안달난 가족들, 가부장제 사회 속 남녀 차별 등이 그것이다.
그 시대에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다룬 이야깃거리를 쓴 통찰력은 대단한 것 같다.

과거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들을 읽는게 즐거운 까닭은,
이렇게 이야기 하나로 옛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독자)가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게 아닐까 싶다.





- “네 싸가지 없는 혹평은 내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 입장에서 찬사를 들을 때까지 나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 나는 왜 낭만을 찾는답시고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나마 하나하나 조각내려 드는 것일까? 이 낭만이 귀한 시대에.

- 혈통은 아들에 의해서만 이어진다는 건 구식 생각이에요. 전 구식 생각의 피해를 받을 생각 조금도 없어요. 사람이 만든 호적상으론 남자에 의해서 대가 이어지는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혈통은 남녀가 동등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봐요. 호적은 이미 낡은 시대의 유물이에요.

- 어느 모로 보나 똑똑하다는 건 어리석은 것보다 미덕이었으나 여자가 똑똑하다는 건 그렇지도 않아 자칫하면 눈에 거슬리는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불공평은 똑똑하다는 타인의 판단의 기준서부터 이미 시작돼있었다. 그들은 실력이 남자하고 대등하면 덮어놓고 똑똑한 여자로 쳤다.

- 무엇보다도 일을 통해 그녀는 혼자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살 수 있다는 기쁨은 새롭고도 신나는 삶의 보람이었다.

-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 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 후남이는 결혼하길 원했으나 예속되길 원하진 않았다. 사랑받고 사랑하길 원했지 애완받고, 애완받기 위해 자기를 눈치껏 변경시키고 배운 걸 무화시키길 원치 않았다.

- 일은 다만 여자가 혼자 설 수 있다는 걸 의미했고 여자나 남자나 혼자 설 수 있다는 건 결혼하기 전에 갖춰야 할 자격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 여자에게도 사회적인 일과 가정의 행복이 서로 상극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동시에 주어져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걸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고 자신은 그 선구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고 뽐내고 싶었다.

- 사건은 흔해도 감동은 귀해. 이러다간 감동의 기능 자체가 마비돼버릴 것 같아 두려워진 적이 있어. 혹시나 해서 감동을 찾아가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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